축구장 14만개 태운 산불, 108년 만의 가뭄

봄 산불에서 여름 폭염·극한호우, 가을 가뭄까지 잇따라 ‘2025년 이상기후 보고서’가 보여준 복합재난의 현실

김성재 기자
2026-03-27 13:25:53

 

[K뉴스25] 대통령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와 함께 발간한 기상청의 ‘2025년 이상기후 보고서’는 지난해 우리나라가 산불·폭염·집중호우·가뭄 등 복합 기후재난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역대 최대 산불 피해와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여름, 시간당 100㎜를 넘는 국지성 집중호우, 108년 만의 영동 가뭄까지 이어지면서 이상기후가 더 이상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상시적 재난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경고가 한층 또렷해졌다.

기상청은 행정안전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10개 부처, 21개 기관과 함께 산불, 폭염, 호우, 가뭄 등 2025년 주요 이상기후 현상과 분야별 영향, 대응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해 기상·기후를 비롯해 농업, 해양수산, 산림, 환경, 건강, 국토교통, 재난안전 등 여러 분야를 함께 짚으며 기후위기의 파급 범위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기후재난의 출발점은 봄철 대형 산불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전국에서 대형 산불 5건이 동시에 발생해 총 10만5084.33ha의 산림 피해가 났다. 축구장 14만7100여 개를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당시 전국 평균기온은 14.2℃로 관측 이래 가장 높았고,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상대습도는 평년보다 크게 낮았다. 여기에 강한 바람까지 더해지면서 대형 산불로 번지기 쉬운 조건이 형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대형 산불 위험예보 체계를 고도화해 실황 문자에 더해 익일 사전 문자까지 발송하고, 위험 징후를 보도자료와 문자, SNS 등으로 전파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 기반 산불정보시스템과 확산예측 체계를 개편해 보다 정밀한 대응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봄철 산불이 지나간 뒤에는 기록적인 더위가 이어졌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이른 확장과 티베트고기압의 영향이 겹치며 지난해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은 25.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구미 55일, 전주 45일 등 20개 지점에서는 관측 이래 가장 많은 폭염일수가 나타났고, 대관령에서도 처음으로 폭염이 관측됐다. 고온 현상은 가을철인 10월 중순까지 이어져 일부 지역에서는 낮 기온이 30℃를 웃돌았다.

이 같은 고온 현상은 해양과 건강 부문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여름철 우리나라 월평균 해수면온도는 최근 10년 중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고수온은 전년보다 15일 빠르게 시작돼 85일간 이어졌다. 폭염의 영향으로 온열질환자도 급증했다. 지난해 5~9월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로 집계된 환자는 4460명으로 전년보다 20.4% 늘었고, 사망자는 29명에 달했다. 100명 이상이 발생한 대형 식중독 사례도 잠정 18건으로 증가했다.

비는 자주 내리기보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장마가 길지 않았던 대신 강한 비가 짧은 시간에 집중되면서 가평, 서산 등 15개 지점에서는 1시간 최다강수량이 100㎜를 넘었다. 국지성 집중호우로 도심 침수와 도로·교통 기반시설 피해, 산사태가 잇따랐고, 인명피해는 25명, 재산피해는 1조1307억원으로 최근 5년 평균의 1.8배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 7월 17일 광주에는 하루 426.4㎜의 기록적인 비가 내려 도로 침수와 지하철 운행 중단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짧은 시간에 쏟아지는 극한호우가 도시 인프라와 재난 대응 체계 전반에 부담을 키운 셈이

집중호우가 이어진 것과 달리 강원 영동지역은 정반대의 재난을 겪었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영동지역 강수량은 평년의 34.2%인 232.5㎜에 그치며 108년 만의 기록적 가뭄을 기록했다. 강릉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준공 이후 최저치인 11.5%까지 떨어졌고, 제한 급수까지 시행되며 식수난이 현실화됐다. 폭염과 가뭄이 겹치면서 농작물 생육 피해도 커졌다.


기상청은 이상기후 보고서가 국내외 이상기후의 발생 현황과 원인, 분야별 영향과 대응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자료로서 국가 기후위기 대응 정책과 분야별 영향 평가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선 기상청장은 “2025년 우리나라는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 가뭄, 집중호우 등 종합적인 기후재난에 직면했다”며 “기후변화와 이상기후 발생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미래 기후위기를 체계적으로 감시·예측해 실효성 있는 국가 대응 정책 수립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김용수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사무처장도 과학적 측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정책 실행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